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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 미하엘 엔데] 모모야 어서 꽃을 녹여줘!

죠이_죠아햄 2023. 10. 19. 16:56

- 2023년 10월, 위로 받고 싶은 주말에 그냥 책장에서 꺼내 읽은 책 [모모 - 미하엘 엔데]

 

먼지 쌓인 책장에서 위로를 얻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
217p -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모모 - 미하엘 엔데

최근에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아홉수인지 삼재인지 참 되는일이 없으니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한탄한다. 돈과 커리어와 행복에 대한 답없는 고민을 계속 해오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되는건지, 지금 당장은 별일이 없지만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며 고민에 빠져있었다. 금요일 반차를 쓰고 일찍 인천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금요일 저녁에 차가 막힐거라는건 충분히 예상 가능했지만, 예민해진 탓인지 버스 안에 있는게 힘들었다. 버스가 멈춰있는 것도, 서있는 것도, 버스안이 답답한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영상을 보는 것도 그냥 다 싫었다. 가만히 있기도 싫었다. 그래서 일기를 썼다.

 

- 2023년 10월 13일 금요일 일기

최근 들어 나의 인생 페이스가 느려진게 확실하다. 나는 일을 해내는 것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별다른 업무가 없는 것도 한몫하긴 한다.). 오늘은 오후 반차를 내서 빨리 퇴근할테니 힘내서 딱 하나는 시작이라도 하고 퇴근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출근했다. 어려웠지만 결국 그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고민도 했고 일부 작성도 했다. 아주 짧은 시간 작업 했지만 그 와중에 보람을 느꼈다. 나는 이렇게 작은 일을 해내도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인데, 계속 미루기만 하고 그 작은일도 못해냈다고 생각하니 더 힘들었던것 같다.

성취감과 보람없는 시간이 쌓이니,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만 보냈다는 죄책감과 무기력감 또한 쌓였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유튜브로 영상도 많이 찾아보고 고민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보기만 하고 실천은 안했던거 같다. 뭔가를 하겠다는 의욕도 정말 없으니 이번 주말에는 아무 고민 하지 말고 온전히 쉬어서 이 무기력감을 잘 끊어내야겠다. 이번 주말은 그게 목표다. 감정을 잘 정리하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힘과 의지를 다시 복구시켜야겠다. 친구도 만나고 엄마아빠와 시간도 보내고 혼자 책도 읽고 시간을 보내며 털어낼건 털어내야겠다. 할 수 있다! 과거와 미래를 차단하는 벽을 세우고 오늘을 잘 살아내자.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해하지말고 미래는 오늘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충실하게. 불안함은 내가 하루를 잘 보내면 줄어든다. 노력해보자.

 

그렇게 주말이 왔다. 기다리던 주말이고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도 생각해놨지만 막상 뭘 해야할지 또 고민을 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건 둘째 치고, 북카페를 갈지 도서관을 갈지도 모르겠더라.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하루가 그냥 지나가 버리겠다는 생각에 문득 두려움도 느꼈다. 두려웠던건 내가 또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다는 후회를 할까봐 그랬던거 같다. 어쨌든 간만에 집에 온 터라, 집의 안락함과 편안함이 더 크게 느껴져서, 그냥 나가지 말고 집에 있는 책을 꺼내 읽어보기로 했다.

 

집에 있는 책은 정말 어렸을 때 산 책들밖에 없다. 성인 되면서는 쳐다도 보지 않고 정리도 하지 않아 먼지도 한가득 쌓여있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며 쉬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권 없는 소설책 중 고민하다가 모모가 눈에 띄었다. 어렸을 때 이 책을 읽고 한동안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았던 기억이 있다. 사실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고 어린 마음에 이 두꺼운 책을 내가 읽어냈다고 자랑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던거 같다. 어쨌든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책과 고민하다가 모모를 골라들고 베란다로 나가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생각치도 못한 위로를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들은 거리청소부 베포와 이발사 푸지이다. 거리청소부 베포는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보람을 느낀다. 천천히 본인만의 속도로 성실하게 일을 하며, 본인의 삶을 사랑한다. 이발사 푸지는 자신의 일을 잘 해내왔지만, 어느날 그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이 부분에서 가장 크게 위로를 느꼈던거 같다. '모든 것이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일 때가 있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는 것이다.' 내가 내 모든 것이 의미없게 느껴질 때 힘들었는데, 이런 순간이 모두에게 있다는게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푸지의 그 순간에 회색 신사가 눈앞에 나타나고, 그 이후 푸지의 삶은 시간을 아끼기 위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 

 

나는 베포 같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 푸지인거 같다. 직업이 무엇이든 베포처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만족하며 살고 싶은데, 푸지처럼 지금까지 내가 해내온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나에게 막연한 것을 꿈꾸느라 현실을 놓치는 거다. 책에서는 시간을 가슴으로 느끼지 않으면 모두 없어져 버린다고 했다. 요즘 내가 힘든 이유는 시간을 가슴으로 느끼지 않아서 인거 같다. 힘든 시간을 빨리 지나보내고 잊어버리려고 하니, 그 사이에 오는 기쁨과 감사함도 못느끼고 지나가는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 읽는 내내 모모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인 시간을 뺏는 회색 신사들이 불쌍하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처음 등장한 회색 신사는 모모가 귀기울여주는 바람에 자신도 모르게 비밀을 발설해 버리고, 그 대가로 사라진다. 회색 신사들의 존재는 누군가의 시간을 태워야 유지가 된다. 그저 자신들의 안위만 중요한 회색 신사들은 남의 존재에 기대어 삶을 유지하고 모모와 친구들이 느끼는 기쁨도 모른다. 그래서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건, 동시에 내가 내 주변사람들에게 회색 신사 같은 역할을 종종 했던거 같다는거다.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걸 좀 참고 미래를 위해 더 바쁘게 빡세게 해야되지 않겠냐며 잔소리를 한동안 해댔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더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한 말이지만, 회색 신사가 한 말이랑 비슷한거 같아서 찔렸다. 앞으로는 더 신중하게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금요일에 다짐한대로 나는 주말을 꽤 잘 보낸거 같다. 감정의 높낮이도 줄어들어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내가 원래 중요하게 생각하던 부분들을 다시 챙기기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을 가슴으로 느끼고 삶을 살라는 책의 메세지가 잘 와닿은거 같다. 힘든 시기에 좋은책이 손에 들어와 다행이다.

 

50p - “얘,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러고는 한참 동안 묵묵히 앞만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탁탁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야.”
그러고는 한참 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생각을 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면 일을 하는 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 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 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 거야.”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오랫동안 잠자코 있다가 다시 말햇다.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그게 중요한 거야.
78p - 이를테면 이발사 푸지 씨의 경우가 그랬다. 푸지 씨는 유명한 이발사는 아니었지만 그가 살고 있는 거리에서는 어쨌든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는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자도 아니었다. 도시 한복판에 작은 이발소를 갖고 있고, 견습생을 하나 쓰는 정도였다.
어느 날, 푸지 씨는 이발소 문 앞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견습생이 쉬는 날이어서 푸지 씨 혼자 이발소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도로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울한 날씨였다. 푸지 씨의 마음도 공연히 서글퍼졌다.
“가위질 소리, 잡담, 비누 거품과 함께 내 인생도 흘러가는구나. 대체 이제까지 살면서 이룬 게 뭐지? 내가 죽고 나면 나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예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일 거야.”
그렇다고 푸지 씨가 잡담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손님들에게 자기 견해를 장황하게 늘어 놓고 손님들의 의견을 듣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또 가위질 소리와 비누 거품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는 일하는 것을 정말 즐거워했고, 자기 솜씨에 자부심도 갖고 있었다. 특히 턱 밑을 면도할 때에 그보다 솜씨가 좋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모든 것이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일 때가 있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는 것이다.
푸지 씨는 생각했다.
“내 인생은 실패작이야. 난 누구지? 고작 보잘 것 없는 이발사일 뿐이지. 이게 내 현재 모습이야. 제대로 된 인생을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푸지 씨는 제대로 된 인생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막연히, 화려한 그림들이 가득 실린 잡지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어떤 것, 무언가 중요한 것, 무언가 화려한 것을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는 우울해하며 생각했다.
“일을 하다 보면 도대체 제대로 된 인생을 누릴 시간이 없어. 제대로 된 인생을 살려면 시간이 있어야 하거든. 자유로워야 하는 거야. 하지만 나는 평생을 철컥거리는 가위질과 쓸데없는 잡담과 비누 거품에 매여 살고 있으니.”
그 순간, 잿빛 고급 승용차가 소리 없이 미끄러져 와서 정확하게 푸지 씨의 이발소 앞에 멈추어 섰다.
98p -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217p - “아니, 꼬마야. 나는 그저 관리자일 뿐이야. 내가 맡은 일은 저마다에게 지정되어 있는 시간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거지.”
“그럼 시간 도둑들이 사람들한테서 더 이상 시간을 훔쳐 가지 못하도록 조정하실 수는 없나요?”
“그럴 순 없어.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니까. 또 자기 시간을 지키는 것도 사람들 몫이지. 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누어 줄 뿐이다.”

“…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장님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 멀고 귀 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220p - 모모는 점차 자기가 완벽하게 동그란 거대한 지붕 밑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모모는 그 지붕이 온 하늘만큼이나 크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 거대한 지붕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다. 지붕 저 높은 곳 한가운데에는 둥그런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거기서 빛의 기둥이 새어 나와 마찬가지로 둥그런 모양의 연못에 수직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탈리아 로마 판테온 (2019년 6월 4일)

359p - 이제 대도시에서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광경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길 한복판에 나와 놀고, 아이들이 비키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전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서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자세히 물었다. 일하러 가는 사람도 창가에 놓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를 줄 시간이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를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돌볼 시간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하게 일할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마다 무슨 일을 하든 자기가 필요한 만큼, 자기가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시간이 다시 풍부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