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4월, 엄마아빠에게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떡할거냐고 물어보고 읽은 책 [변신 - 프란츠 카프카]
'가족'이라도 사랑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 있을 수 있겠다.
기억에 남는 문장
- 그렇긴하지만, 그렇긴 하지만, 이 사람이 과연 아버지란 말인가?
- 그들은 오늘 하루를 푹 쉬고 산책하는 날로 삼기로 했다. 그들은 이런 휴가를 받을 자격이 충분할 뿐만 아니라 그런 휴가가 반드시 필요한 상태이기도 했다.
최근에 친구가 부모님께 내가 만약 바퀴벌레로 변한다면 어떻게 할거냐 묻는게 유행이라며 해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뜬금없이 카톡을 보내봤다. ‘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할거야?’라고. 그 바퀴벌레가 나인게 확실하다면 키워준다는 엄마, 잡아서 똥통에 버린다는 아빠,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한마디 던지고 카톡을 읽지도 않는 동생.(🤣) 잠깐 엄마아빠에게 말도안되는 상황을 상상해보게 하고 반응을 보는게 재미있었다. 이렇게 물어보는게 언제부터, 누가, 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소설 '변신'이라는 책을 보고 시작한게 아닐까 싶었다.
어렸을 때 어디선가 주인공이 바퀴벌레로 변한다는 책 '변신'의 줄거리를 보고, 정말 궁금해했던 기억이 있다. 동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아 읽기도 했었는데,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걸 보니 읽으려고 시도했지만 완독하지 못했었나보다. 아무튼 이번에 엄마아빠의 반응을 보고나서 다시 책의 내용이 궁금해져서 읽어보았다.
책을 읽는 내내 바퀴벌레로 변해버린 주인공에 연민이 갔다. 주인공 그레고르는 바퀴벌레로 변신한 그 순간에도 가족을 위해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걱정이 앞선다. 가족들이 주인공의 경제활동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주인공이 일을 함으로써 여유롭게 살 수 있었지만, 주인공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니 금전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을 하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특히 아버지가 일을 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라고 인식했던거 같다. 일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낯설어 하는 장면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바퀴벌레로 변신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한 순간, 일하느라 잠을 너무 못자 헛것을 본다고 생각할 정도로 고되게 살아온 주인공이다. 주인공에게 아버지가 낯설게 느껴졌던 그 순간은, 가족을 위해 기꺼이 했던 행동이 혼자서만 고군분투 하는 희생이였구나 라고 느낀 순간일 듯 하다.
그레고르에 대한 연민과는 별개로, 그레고르를 대하는 가족들의 행동 변화가 이해가 안가진 않았다. 흉측한 모습에 두려워하면서도 가족이니까 주인공의 방을 청소하고 먹을것도 챙겨주고 배려한다. 하지만, 돈이 떨어지고 일을 시작하여 본인들의 삶이 힘들어지면서 그레고르를 신경 쓸 여지가 없어진다. 바퀴벌레는 집안을 더럽히고 그나마 돈을 벌 수 있는 일 조차 망쳐버린다. 본인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나중에는 바퀴벌레가 아들이나 오빠가 아닌 '짐승'이라는 존재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레고르의 죽음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낀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지 고민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나의 결론은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가족이 없다면, 명예도 돈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레고르가 바퀴벌레로 변신하기 전의 삶처럼 가족만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을 살고 싶진 않다. 그리고 그레고르의 가족이 그레고르를 짐승으로 여기게 된 것도 그레고르에게는 안타깝고 가혹하지만 이해가 간다. 나는 그러지 않을거라 자신할 수 없다. 결국 스스로의 인생이 있고 사랑할 줄 알아야 가족도 소중히 여길 수 있는거 같다.
나는 엄마아빠께 '건강하게 오래오래 일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 말을 섭섭하게 들으셨던거 같은데, 하도 자주해서 이제는 별말씀 안하신다. 엄마아빠께 말이라도 예쁘게 하고 저런 말은 안하는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변하지 않는 솔직한 마음이다. 엄마아빠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나 자신과 내 인생을 더 사랑하나보다.
가족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있다면, 일방적인 희생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에서 가족을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하는 주체는 주인공의 변신을 기점으로 바뀐다. 만약 이 가족이 경제적인 책임을 함께 지어 그레고르가 일하지 못해도 괜찮았더라면, 그레고르가 세입자들 앞에 나타나지 않아 가족들의 희생이 조금 덜어졌더라면, 그러면 결말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했던 것은, 어느날 한순간 내가 그레고르의 상황이 될 수도, 그레고르의 가족의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면, 적어도 그 희생과 수고로움을 알아주고 이해해줘야 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러기에 그렇게 녹록치 않다는걸 느끼고 있다. 그저 나의 인생에 변신이라는게 없으면 좋겠다. 밈으로 생각나서 가볍게 읽으려고 꺼낸 책이였는데,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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